왜 다양성이냐고요?
이를테면 복지의 논리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자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들이 불쌍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온전하게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라야 건강하기 때문이죠.
좀 거창한 얘기를 해볼까요? 한국 사회의 주류는 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을 금과옥조처럼 주어 섬깁니다. 그러나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진화의 역사를 보면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류가 지구 생태계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진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실은 과거의 어느 때부터 약자들, 늙고 병들고 생존에 불리한 사람들을 차가운 자연계로 내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적자생존의 논리대로라면 진화의 패배자로 분류되었을 이들을 사회라는 이름으로 수렴했기 때문입니다.
진화를 만드는 변이는 유전적 돌연변이에 근거하며, 돌연변이는 실은 다양성의 다른 이름이지요. 더 많은 변이가 더 많은 진화적 잠재력를 보장하는 것이지요.
적자생존은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는 미래의 결과에 불과하며, 적응적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더 많은 진화적 가능성을 발현시킬 현재의 다양성이라는 것입니다.
(다양성을 이런 진화의 패러다임에 수렴시키는 것을 불편해하실 분도 계시겠지요. 우선은 넘어가 주시길)
* 자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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