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년전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
** 이제와 보면, 굴드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 못했던 것도 같네요.
** 뭐... 다 그런거죠.
** 책은 쌓여만 가는데, 이젠 스마트폰까지 방해를 합니다.
** 가끔은 스마트폰을 끄고 독서도 좀 하고 살아야 하는데 말이죠?
** 진화, 변이, 종다양성, 최적화, 발생... 참 머리 아픈 주제들입니다.
*** 여하튼... 이 책 추천입니다. 읽어보세요. 아주~ 재미나요. ^^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Wonderful Life: The Burgess Shale and the Nature of History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역, 경문사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1422403&CategoryNumber=001001002006003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에 의하면, 생명체는 단일 기원에서 연원하여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점진적이고도 단계적인
방식으로 진화합니다. 이러한 진화모델은 역원뿔형 도식-단세포 생물에서부터 출발하여, 위로 갈수록 갈라지고 다양해지는... 그리고
때때로 자연선택되지 못한 도태종들을 끊임없이 도식에서 탈락시키며 현재에 이르는-으로 표현됩니다.
굴드는 이러한 역원뿔형 도식으로 표상되는 진화론의 모델 자체를 부정합니다.
이 책에서 굴드는 캐나다의 초기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발견된 화석군(버제스 혈암으로 명명된)에 대한 연구사를 마치 르포르타쥬 같은 형식으로 기술합니다. 최초 발견자이자 미국의 위대한 고생물학자이자 과학 행정가였던 칠코트가 어떤 오류를 저질렀고, 칠코트와 동일한 오류(이른반 역원뿔형의 진화론적 도식)에 빠져있던 후세의 연구자들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나가는지를 한편의 드라마처럼 기술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역원뿔 도상에 입각한다면, 초기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발견된 이 일군의 화석군들은 선캄브리아기까지 생물계를 지배하고 있던 단세포 생물들과 고생대의 다세포 생물군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물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점진적, 단계적으로 진화하니까요. 그러나 칠코트 이후의 연구자들의 의하면 버제스 혈암에서 발견된 일군의 동물군들은 고리는 커녕, 기존의 분류학적 계보로는 수용할 수 없는 새로운 문과 종들 투성이였습니다. 마치, 수천만년 혹은 수억년 이후에나 나타나야할 종다양성이 캄브리아 초기 지층에서 나타난 것 처럼. 거기다 그들 대부분은 그 이후 다시는 화석으로 발견된 적이 없는 종류들이었습니다.
이른바 "캄브리아기 폭발"에 대한 굴드의 해석은 진화가 점진적인 방식이 아니라, 일정 시기에 "폭발"이 이루어지고, 그 후 "격감"을 거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굴드는 이를 "초기 실험과 이후의 표준화"로 표현합니다. 즉, 생명체는 특정 단계에 무수히 많은 실험이 이루어지고, 이 중 일부가 특정 요인에 의해 살아남아 생명계를 채우게 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진화론에 적절한 도식은 역원뿔형이 아니라, 다층적으로 쌓인 원뿔-크리스마스 트리-이 됩니다.
그러나 굴드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진화론의 표현하는 적절한 도식이 무엇이냐가 아닙니다. 이 책에서 굴드가 주장하고 싶은 핵심 개념은 "우연성"입니다.
버제스 혈암에서 발견된 다양한 생명체(혹은 실험체)들은 최종적으로 어떤 종이 살아남을지 판단 할 수 없으리만큼 세련되고, 효율적입니다. 통상적인 진화론에 의하면 어떤 종이 살아남은 이유는 그것이 자연선택될 수 밖에 없는 논리적인 개연성이 존재하기 때문이지만, 버제스 혈암의 사례를 볼 때, 그 개연성이란 사후 유추 이상의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오늘날 생물계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절지류. 그러나 종수와 개체수 양자를 모두 비교했을때, 버제스 시대의 지배자는 절지류가 아니었으며, 절지류가 버제스 시대 다른 설계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죠. 굴드는 묻습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서 현대의 고생물학자가 버제스 시대의 바다로 간다면, 과연 어떤 종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있었을까?"
굴드는 우연성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합니다. 그중 인상적인 두가지.
백악기 멸종 당시 대부분의 플랑크톤이 멸종했음에도 유독 규조류는 살아남았습니다. 규조류는 용승류(염양염이 풍부한 해수가 해저에서 수면으로 올라오는 것)에 의지해 살아가는데, 양분이 고갈되면 규조류는 '휴면포자'가 되어 신진대사를 중단하고 깊은 바다속에 가라앉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운석 도래에 의한 백악기 멸종이 시작됩니다. 대다수 플랑크톤이 전멸합니다. 그러나 규조류는 '휴면포자'가 되어 그 긴 시간을 버텨냅니다. 수백-수천년에 이르는 멸종 기간과 같은 상황을 위해 진화시킨 것이 아닌 적응 패턴이 규조류를 살아남게 합니다.
백악기 이후 육생 동물계의 지배자가 되는 것은 포유류입니다. 통상적인 자연과학 교과서에 의하면, 포유류가 거대 파충류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몸집, 털, 포유류의 알 포식 등등의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중생대의 오랜 기간 동안 생물계의 한 귀퉁이에서 거대 포유류들에게 짓눌려 있던 포유류가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운석 도래에 의한 거대 파충류의 멸종" 때문이었습니다. 운석 도래는 우연적 사건입니다. 그리고 공룡들은 오랜 기간 자연환경에 적응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적응은 성공적이었기에 지배적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운석 도래라는 우연적 사건이 갑자기 공룡들의 성공적 '적응요인'을 갑자기 '부적응 요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도태의 가장 적절한 요인은 엄밀한 진화론적 모델과는 거리가 먼 우연적 사건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연성이 포유류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초기 포유류는 "운석 도래과 공룡의 도태"라는 상황과 상관 없이 진화시켜온 요인들 때문에 육상 동물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죠. 즉, 포유류가 파충류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으로 혹은 매우 주요하게 "우연성" 때문입니다.
물론 굴드는 "모든 것은 우연이며, 내일이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진화론의 점진적, 단계적 모델과 역원뿔형이 표상하는 진보의 원리가 폐기되어야 한다는 거죠. 게다가 그 전통적 진화론이 사회진화론과 우생학, 인강 중심주의적이고 자문화 중심주의적인 보수주의 결합되기 때문에 더더욱. 굴드의 문화권을 고려한다면 그의 가장 주된 적은 아마도 미국의 (기독교) 우파 쯤 되려나요?
신다원주의자로서의 굴드의 정교한 설명과 이론은 직접 책을 통해 살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제가 잘 이해를 못해 더럽게 복잡하게 썼습니다만, 굴드의 책은 굉장히 재밌고, 쉽고, 명료합니다. 고생물학 서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르포 스타일의 학사(學史) 같다고나 할까요? 여하튼 재밌고 쉽습니다.
굴드의 이야기에서 여러가지 다른 함의들을 끄집어낼 수 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는 내내 로자 생각이 나더군요. 헐... -_-
굴드의 이야기를 곡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굴드 자신이 책 내내 "낡은 (사회) 진화론"과의 투쟁이 서술의 목표라고 주장합니다. 즉, 굴드의 이론적 개념으로서의 우연성과 굴드 자신의 (사회)진화론과의 투쟁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원제인 "Wonderful Life"는 영화 제목입니다. 나름 착하고 공정하게 살고자 애써왔던 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삶을 회의합니다. 그러자 그의 수호천사가 나타나 테이프를 돌려줍니다. 만약 주인공이 없었다면 지난 수십년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10분으로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당연히, 주인공의 공백은 현실을 더 어둡게 만듭니다. 당연히 주인공은 용기를 얻고 열심히, 착하게, 공정하게 잘 먹고 잘 살기로 했다... 뭐 이런 내용이라더군요.
원제를 통해 굴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겁니다. "만약 신이 존재해서 지구의 역사를 처음부터 돌릴 경우 45억년이 지난 후 인간이 나타날 것인가?" 어쩌면 테이프를 다시 돌린 지구의 풍경은 SF 영화 속의 그것과 같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까불지 말란 소리죠. 인간이라는 종은, 고귀한 지적 능력은 진화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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